범어사 매표소 사무원과 목례를 나누고 10여 보(步), 어산교(魚山橋)를 건넜다. 여기서부터는 히에로파니[Hierophanie 성현(聖顯)] 공간인 부처님의 세계임을 알리고 속세의 티끌을 개울물에 씻고 체가름 하여 들라 함이다.


범어사 큰법당에 들러 부처님께 삼배하고 북문으로 오르는 길에 들었다가 슬쩍 다시 개울물을 왼편으로 건너면 원효암으로 가는 길을 만날 수 있다.


그전까지는 원효암 가는 길을 숨겨 놓았었는데 요즈음은 팻말까지 세워 친절히 안내한다. 범어사 조실 스님이 계신 암자고, 묵언으로 맹렬정진 수행하던 스님들의 도량이어서 중생의 범접을 금해서 특별히 청을 넣고 허락을 받아야 갈 수 있었던 암자여서 다가가는 길조차 표 나지 않게 했었는데, 이젠 원효암으로 가는 길 곳곳에 헷갈리지 않도록 안내표지판을 세운 것이 친절하다면 친절한 것이겠지만 왠지 그 그윽함을 흐려 놓은 것 같아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하다. 큰스님 청담과 성철도 여기서 수행을 하셨다 하고 추사가 쓴 현판이 걸릴 정도니 그 향훈의 깊음을 짐작할 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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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www.chang2u.com]

 

들머리는 좀 가팔라 숨이 찼다.그래 속세의 더러운 먼지와 욕심으로 채워졌던 숨길을 다 토해내고 체가름 하여 금정산 맑은 기운이 폐부를 채울 즈음, 산길은 고즈넉해지면서 경사를 줄이고 평온해진다.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함께라면 나직나직 담소하며 걸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아무렇게나 깔려 있는 크고 작은 돌머리를 밟기도 하고 키를 낮춘 풀더미를 가볍게 저려 밟으며 오르다가 가끔씩은 빗물에 속살을 드러낸 맨 흙길을 걷기도 한다. 가볍게 젖혀 굽은 길, 키 큰 떡갈나무 잎새가 흩뿌리는 햇살에 이마가 간지럽고 드문드문 만나는 진달래, 철쭉의 알싸한 향기가 좋다.


원효암 가는 길은 스무 발자욱을 곧게 가지 않을 정도로 슬쩍슬쩍 돌아가는 길이다. 구비를 돌 때마다 지나온 길이 돌아다 보이고 또 가야 하는 길이 슬며시 내다보이는 오솔길, 아직은 사람의 때를 덜 탄 그래서 고즈넉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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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분 이 아름다운 길에 취해 오르면, 삐따닥한 사립문 사립기둥에 원효암이란 작은 나무패가 걸렸다.어쩌다 길을 잘못 든 등산객들을 위해 오른쪽으로 길을 안내하고 산문(山門)에 드는 마음자리를 한 번 더 확인한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 산문으로 들어서면 또 작은 개울을 만난다. 아직도 못다 씻은 속진을 닦아내라는 뜻일까? 범어사 들머리로부터 세 번째 마음가짐을 하고서야 원효암의 향훈을 접할 수 있다. 아니다. 한 번 더, 10여 분 좀 가팔라진 길을 도타 올라 지능선상에 서서 산성으로 흐르는 갈림길을 만나야 원효암으로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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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갈림길 왼쪽 바위등을 조심스레 오르면 <의상대義湘臺>, 눈앞이 확 트이며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한눈에 들어온다. 구서동, 남산동은 물론 멀리 수영, 광안대교도 보이고 맑은 날이면 아슴아슴히 대마도도 보일 듯한 전망, 의상대사가 내려다본 전경이 저렇게 갯가 바위에 따개비 붙듯 아파트, 빌딩, 집들이 엉켜 있지는 않았을 터,허나 오늘은 아귀다툼으로 평안한 날이 없는 사람들의 삶이 내려다보인다.여기서 잠깐 멀리 거리를 두고 세속을 떨어져 바라보게 하는 것은 중생들이 버리지 못하는 삶에의 집착을 조금은 떼놓고 보라는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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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닦여진 황톳길을 조금 따르면 오른쪽에 세월의 이끼를 곱게 입은 부도(浮屠) 세 기가 있고 그 맞은편에 앙징스럽달 삼층 석탑이 다소곳하다. 부도는 본디 다섯 기가 아니었을까 싶게 두 개의 기단은 허물어져 있다. 부도 자리가 넉넉지 않은 걸 보면 당우(堂宇)의 터는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면 석탑이 가람 밖에 있다는 게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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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찌르는 삼나무 숲길 곁엔 스님들이 가꾸는 채전이 제법 널찍하고 산죽이 자우룩해서 아주 심산유곡에 든 듯, 길은 다듬지 않은 돌들을 걸음걸음에 알맞추 놓아 편하고, 가볍게 휘었다 쳐지기를 두어 번, 길은 문득 끊기고 숲을 만나는 듯, 둔덕에 올라야 오른쪽으로 크게 꺾여 천왕문을 마주할 수 있다. 제자리를 잃은 석탑의 반듯한 탑신(塔身) 첫 계단을 미안스레 밟고 오른다. 기우뚱 천왕문 들보는 오른쪽으로 기울고 단청도 벗겨져 퇴락하다. 허나 그것이 더없이 정겹고 따뜻하다. 히에로파니의 위엄보다는 시골 옛집을 찾아드는 친근감이 있어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절간이면 으례 있는 석탑이나 석등도 없다.큰법당의 기와는 세월을 이고 오히려 푸르렀고 갸우뚱 막자란 나무를 그대로 잘라 세운 듯한 두리기둥 넷, 그래서 금방이라도 풀썩 주저앉을 것 같아 아슬아슬하다. 법당 앞마루에 올라서면 아귀가 틀리고 빠져 마룻바닥은 삐걱삐걱 비명을 지르고 앞으로 엎어질 듯한 협문을 열고 들어서면 부처님은 자애로운 미소로 맞아주되 삼배(三拜)를 받고는 슬쩍 두리기둥 뒤로 숨어버려 부처님도 없어지는 법당. 순간 멍해진다. 내가 어디에 와 있는가. 허위허위 원효암에 올라 법당 안에서 부처님을 놓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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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삼라만상이 다 부처요 법신이시라는데,구태여 따로 부처를 찾을 필요가 있겠는가? 바래버린 단청, 밑둥이 삭아버린 기둥,삐걱거리는 마룻장,눈부시지 않은 채광,삿되지 않은 향훈,모든 것들이 녹아 빗대어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어우러져 버리는 공간,그러니 난들 어디 있겠는가. 허허로움,멍멍함,스며듦,그리고 잦아듦.


그렇게 잠깐 앉았다 나와 법당 툇마루에 앉으면 눈앞에 펼쳐지는 고졸(古拙)한 산수화.어깨 처진 천왕문 당우 곁에 열 길은 넘어 당당해 보이는 은행나무, 땅바닥에 엎드려 퍼진 향나무, 키를 낮춘 목련,정녕 딴 세상에 온 것이 아니겠는가.


조실 스님의 처소를 비껴 올라 만나는 <원효대元曉臺>. <의상대>가 속세를 향해 있었다면 <원효대>는 절간을 향해 있다.저쪽 계명봉 아래 계명암을 비롯한 열 암자와 범어사 전부가 한눈에 들어온다. <원효대>가 절간을 향해 앉은 것은 스님들의 마음자리를 가다듬게 함이요,안으로 안으로 깊이 침잠하는 선정(禪定)을 위함이었을까? 염화시중의 미소만으로도 만법을 전하시듯 묵언으로 마음을 오가는 스님들만의 대화를 위함이었을까?


감당하기 어렵게 다가오는 사자후(獅子吼)를 피해 철망을 넘어 산 쪽으로 달아난다.어찌 부처님의 가르침을 다 알며 따를 수 있겠는가. 달아나자.달아나자. 허나 불쑥 맞닥뜨리는 길섶의 부도 한 기.왜 이 부도는 홀로 이렇게 떨어져 있을까. 절간 곁을 버리고 나앉은 건 또 무언가.달아나 보았자 부처님 손바닥 안임을 일깨우기 위함인가.


두려운 마음으로 더터 산길을 오르면 금세 벗어났다고 생각했던 철망이 다시 길을 막는다.원효암의 철망을 넘어 달아났는데 다시 길을 막는다.원효암의 철망을 벗어났는데 또 철망이라니.어디가 안이고 어디가 밖이란 말인가? 속인의 범접을 두 번씩이나 막았는가.신심(信心)이 얕아져 환속하려는 스님을 가두려는 것인가.내가 철망 속에 갇혀 있는가, 빠져 나온 것인가? 안과 밖의 구별이 없다면 히에로파니의 절간과 속세가 또한 경계가 없다는 것인가?


취한 마음으로 떨며 더위잡으면 고산습지,출입을 막는 팻말과 밧줄이 처져 있고 이를 둘러 나오면 산성,그리고 시끄러운 등산로. 문득,아니 창졸간에 만나는 아귀다툼의 사람살이 세상이 어지럽다.


김중하(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김중하(金重河) 님은 모교 경남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셨던 저의 스승이요,선배님이다.그 뒤 부산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시다가 지난해 여름 정년퇴임,현재는 명예교수로 계시며 문학평론가이다.


선생님은 산을 끔찍이 사랑하여 전국의 산을 두루 섭렵해 온 원로 산악인이기도 하다.틈나는 대로 요즈음도 배낭을 메고 열정적으로 산을 찾아들곤 한다. 특히 산과 산행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폭넓은 안목으로 정평이 난 선생님의 글은 두고두고 곰씹어볼 만하다.용마산악회 홈페이지(www.yongma.org)에 실린 글을 산바라기 블로그에 옮겨 싣는다.